부회장 인사

 

재무학회 회원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한 세기 가까운 대한민국 현대사중 가장 드라마틱했던 정유년이 매서운 추위와 함께 저물고 무술년 새해가 밝고 있습니다. 객관적인 공과와 주관적인 애증이 여전히 혼란스럽게 공존하지만, 저희는 어쨌든 촛불이라는 새로운 시민혁명으로 평화로운 공화정교체를 경험한 첫 세대가 되었습니다. 안팎으로는 여전히 불안과 불확실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지만, 어느 때보다 능동적이고 깨어 있는 시민의식과 남다른 경험으로부터의 자부심은, 우리 민족이 앞으로의 어려움을 헤쳐 나가게 할 또 다른 귀중한 자산이 되지 않을까 기대도 됩니다.

격변하는 현대정치사만큼이나 금융환경 역시 혁명적인 변화에 맞닥트려 있습니다. 당장 눈앞에 닥친 핀테크로 인한 금융시장 변화의 방향과 파장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허둥대고 있는데,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쓰나미가 저 멀리 수평선에서 아른거리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금융시장은 여웃돈을 가진 경제주체(투자자)로부터 해당 돈을 이용해 부가가치를 창출할 능력을 가진 경제주체(기업)에게로 자금을 연결하고 궁극적으로 되돌려 받게하는 기능을 담당하여왔습니다. 다만, 해당기능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점들(정보비대칭, 거래비용, 위험관리 등)을 얼마나 효율적이면서도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지가 현실적인 고민거리였으며, 이는 관련정보와 비용효율성을 겸비한 특정금융기관들에 의한 다양한 금융서비스로 해결해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금융시장에서의 금융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여전한데, 해당서비스를 제공하는 주체와 방식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제기와 더불어 이를 극복하기 위한 구체적인 변화의 움직임도 활발합니다. 여기에는 우선 금융소비자들의 소비환경과 라이프 패턴의 변화를 이끈 스마트 모바일의 급속한 확산이 있었습니다. 스마트폰이라 불리우는 모바일의 등장은 시대의 문화아이콘이던 아이패드나 자동차운전시 필수품이던 네비게이션이라는 현대생활의 필수품목을 이미 흔적없이 사라지게 했을 뿐만 아니라, 쇼핑아울렛이나 그간의 정보산업혁명을 이끌었던 PC나 테블릿PC 역시 곧 역사속의 유물로 걷어 낼 기세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기존에 금융서비스를 담당하던 금융기관의 일부기능을 효율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전자금융단계에서 나아가, 핵심금융서비스를 기존의 금융기관이 아닌 핀테크기업이 혁신적으로 대체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앱을 제공하는 핀테크기업이 모바일 등을 접점으로 고객들과 직접 소통함으로써 금융서비스의 핵심가치를 담당하게 되고, 금융기관은 오히려 금융거래의 후방에서 보조적인 업무를 담당하게된 것입니다. 현재 논란이 되는 비트코인은 은행망이나 SWIFT망 등 기존 금융인프라를 전혀 거치지 않고 인터넷 등을 통해 전세계 개인간 금융거래를 가능하게 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골드만삭스는 이러한 핀테크의 등장을 새로운 형태의 그림자금융(shadow banking)이라고 규정지었습니다. 기존의 그림자금융이 은행을 위시한 전통적인 금융기관을 우회하여 자금을 중개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비해, 새로운 그림자금융은 P2P나 크라우드펀딩처럼 핀테크를 담당하는 비금융기관을 통해 수행되기 때문입니다.

핀테크의 등장은 이미 금융산업에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왔고 또한 앞으로도 적지 않은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우선 금융서비스(banking)가 금융회사(bank)에서 분리되는 양상으로 금융업의 기능별 분화(unbundling)를 들 수 있습니다. 기존 금융회사가 독점적으로 담당하던 예금, 대출, 송금, 투자자문 등 다양한 금융서비스들을 핀테크기업들이 기능별로 분해하고 혁신적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기존 금융회사의 업무영역을 대체하고 있습니다.

초기에는 소비자에게 접근이 쉬운 지급결제서비스를 중심으로 성장하였으며 점차 금융소프트웨어, 데이터분석 및 플랫폼영역으로 그 영역이 확대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박 래 수

(숙명여대 교수)

 

 

 

 

 

 

 

 

 

 

 

 

 

 

 

 

 

 

 

 

 

 

 

 

 

 

 

 

 

 

 

 

 

 

 

 

 

 

 

 

 

 

 

 

 

 

 

 

 

 

 

 

 

 

 

 

 

 

 

 

 

 

 

 

 

 

 

 

 

 

 

 

 

 

또한 핀테크의 등장으로 모바일 및 인터넷 등을 통해 기존 금융인프라를 우회하여 금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길이 열림에 따라, 애초에 망(network)을 기반으로 하는 금융산업의 자연독점적 성격을 자연스레 변화시킬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러한 금융서비스기반의 변화는 기존의 금융기관으로 하여금 더 이상 규모 및 범위의 경제효과를 누리지 못하게 되고, 각종 수수료 수익 등 전통적인 수익원에 상당한 손상을 입게 됨에 따라 금융기관들의 수익기반이 취약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한 엄격한 자격요건에 의한 진입장벽을 통해 금융산업의 안전망을 책임져왔던 금융규제당국에게도 새로운 고민거리를 안겨주게 되었습니다.

그간 제조업에 비해 발전속도가 더딜 뿐만 아니라 규제라는 울타리에 안주해 있다고 비판받던 국내금융산업에 대해 핀테크는 일면 새로운 메시아의 등장으로서도 비견되고 있으며, 일부는 예전의 동북아금융허브 아젠다 논란처럼 국내금융산업의 돌파구로서의 역할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세계적인 수준의 ICT기술에 근접해있고 초고속 통신망 등 관련 인프라를 갖추고 있으며 우수한 금융인 및 IT전문가도 풍부한 현실에서 일자리 창출을 국정 제1의 과제로 삼는 신정부의 출현은 핀테크를 매우 매력적인 금융산업의 아젠다로 충분히 삼을만하다고 판단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안정과 신뢰를 바탕으로하는 금융산업의 특성을 감안하다면 새로운 변화를 맞이함에 있어 두려워하기보다 아무리 신중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보입니다.

우선 일각에서 논의되는 핀테크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안정적이고 거래의 신뢰를 담보하기 위해 그간의 금융거래경험을 바탕으로 도입된 금융규제장치의 완화에 대해서는 매우 신중했으면 합니다. 금융서비스의 핵심에는 편리함과 저렴함에 있다기보다는 금융서비스의 본질에 기반한 신뢰와 안정성에 있습니다. 해외 인터넷은행의 사례를 살펴보면, 모회사의 영업기반을 통한 많은 충성 고객과 일반은행과 차별화된 독특한 서비스를 보유한 인터넷은행은 성공했지만, 단순히 가격경쟁 위주로 고객을 확보한 은행들에서는 실패했던 사실을 반면교사 삼아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향후 핀테크 혁신은 기존의 고비용 비효율 금융관행을 파괴하여 금융거래비용을 혁신적으로 절감시킴으로써 비효율적인 금융관행에 지친 금융소비자의 불편을 해소하고 궁극적으로 금융산업 전체의 비용 효율성을 개선하는 데로 나아가야할 것입니다. 또한 금융거래당사자간 정보의 질 격차를 줄여 줌으로써 금융소비자들의 시장참여를 독려하고 금융시장의 거래효율성을 제고해야할 것입니다. 아울러 기존 금융산업이 커버하지 못한 틈새시장의 금융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금융소비자의 금융권익을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유도해야할 것입니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제품과 서비스의 네트워크인 플랫폼을 통해 가치를 창출하고 확산시키는 4차 산업혁명은 모든 것이 연결되고 보다 지능적인 사회로의 진화를 지향합니다. 따라서 이로 인한 금융산업의 변화를 가늠하기란 지금으로서는 쉽지 않습니다. 어렸을 적 LP레코드나 카셋트 테잎 등을 경험했던 음악 시장 역시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진화를 거듭하더니 최근에는 스마트 모바일의 발전으로 아이튠즈나 유튜브 등의 플랫폼을 통해 새로운 시장변화의 중심을 맞고 있음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무인자율주행차 및 드론택배의 기술발전이 대표적인 제조업인 자동차산업과 유통물류업의 미래를 어디로 이끌지는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불을 발견했던 고대의 인류처럼, 민주공화정을 처음 채택한 아테네시민처럼, 콜롬부스를 처음 목도한 아메리카원주민처럼, 핀테크와 4차산업혁명으로 인한 금융시장의 변화를 바라보는 지금의 호기심과 두려움 그리고 기대감이 장차 무엇으로 귀결될지는 아직은 잘 모릅니다. 다만 새로운 변화에 대해 겸허하게 바라보고 보다 신중하게 대비했으면 합니다.

모쪼록 2018년 무술년 새해 재무학회 회원님들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