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회장 인사

지배구조 개선, 진화적 유물 그리고 곡학아세

[재무학회 회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 글은 지배구조원 주최의 금융회사 지배구조 관련 세미나(2110. 11.26)에서 토론한 내용과 평소의 생각을 선배, 동료 그리고 후배 회원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어서 간략하게 정리했습니다.]

경영학은 기업의 경영자를 훌륭한 사람으로 간주하고 경영자에게 훌륭한 도구를 제공하여 도와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반하여, 기업재무에서 지배구조 분야의 연구는 경영자의 의도를 의심하는 정도까지도 나가며, 대리인 이론에 기반하여 학문적으로 많은 이론적, 실증적 성과를 내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실무적으로도 좋은 정책 제시로 현실을 개선하는 데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기업재무 분야의 연구는 기존의 관행적인 시각을 벗어나서, 기존의 것들을 해체하며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지배구조의 문제는 일반 기업에서만이 아니라, 금융회사, 국립대학, 사립학교, NPO, NGO 등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도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기업지배구조 개선문제는 현행 관행과 제도를 정부개입을 통한 인위적인 방식으로 변경하려는 제도설계(mechanism design)의 문제로서, 정부의 개입과 관련한 여러 가지 논란을 야기합니다. 현행 관행/제도는 “최적 진화의 산물”이며, 따라서 자생적 질서에 대한 인위적 개입은 역효과를 가져온다는 반대논리가 있습니다. Hegel의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고,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다”는 명구는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것(개체/제도/관행 등)은 그동안의 경쟁과 도태과정에서 나름대로 합리성을 가졌기 때문이다‘라는 의미로 이해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최적의 대응물”을 정보가 부족한 인간(정부)이 개입하여 인위적으로 변경하려는 것은 필연적으로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올 것이므로 정부개입은 하지 않아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이러한 개입반대 논리에 대한 강력한 비판은 “진화적 유물(evolutionary relics)”의 개념에 입각한 논리입니다. 진화적 유물은 예를 들어 설명하면 쉽습니다. 현재 인간이 당분과 지방분을 좋아하는데, 이는 과거 10만 년 전 영양분이 부족한 수렵채취 경제상황에서는 생존력을 높이는 당시 환경에 적합한 성향이었으나, 풍요로운 현대 사회에서는 오히려 환경에 맞지 않는 불합리한 구세대의 유물이 되어버렸습니다. 진화론적 유물개념과 기득권과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y)이 결합되면, 이제는 비효율적인 관행/제도가 진화적 유물처럼 잔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rule setting에 대한 정부의 개입이 정당화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개입에는 바로 정부실패의 문제가 제기됩니다. 기업에서 대리인 문제를 우려하듯이 정부에서도 관료/규제자의 대리인 문제에 대한 우려가 있으며 따라서 규제자를 견제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리인 이론에서 전통적인 딜레마는 “Who monitors the monitor?”의 문제입니다. 정부관료/규제자와 피규제자의 전략적 상호작용 상황에서는 규제포획(regulatory capture)문제가 발생하며, 피규제자는 물론 정부(관료)의 유인을 감안하여 제도설계를 해야 한다는 것이 공공선택학파(Public Choice)의 교훈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기업지배구조 연구는 공공선택학파의 연구결과를 포

 

양 채 열

(전남대 교수)

 

 

 

 

 

 

 

 

 

 

 

 

 

 

 

 

 

 

 

 

 

 

 

 

 

 

 

 

 

 

 

 

 

 

 

 

 

용하면 규제자에 대한 효과적인 통제장치를 고안하는 데에 더 많은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다음은 규제자의 유인과 통제의 필요성에 대한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에 있는 공공선택학파에 관한 좋은 구절입니다.

“그동안 경제학 교과서에서는 시장의 실패를 교정하기 위해서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과연 정부가 이론적 처방대로 임무를 제대로 완수할 것인가? 하는 질문을 제기. 그동안 교과서는 민간기업을 너무 지저분하게, 그리고 정부는 너무 깨끗하게 묘사해 왔으나, 이제 그러한 편견을 버릴 때가 되었다. ... 정부의 개입을 주장했던 천재 Keynes는 어찌하여 이러한 정부의 구조적 모순에 대해 아무런 경고를 하지 않았을까? 만약 전혀 몰랐다면 Keynes는 정치적으로 순진했다 할 것이요, 알고도 모른 척 했다면 Keynes는 분명 부도덕했다고 할 것이다.”

대리인 문제를 해소하는 데에는 내부규율과 외부규율이 보완적으로 작동하여야 한다는 것이 지배구조연구의 교훈입니다. 금융회사의 경우 준법감시인 및 내부통제 개선 방안이 제시되지만 이러한 내부규율방식에 추가하여 사회의 외부 규율을 강화하는 조치가 병행되어야 합니다. 주요 금융회사의 조직차원의 불법사례 - 특히 차명계좌 문제 - 를 볼 경우에, 지배주주의 경영권이 강한 경우에는,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속담처럼, 준법감시인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됩니다. 따라서 내부고발제의 적용범위를 확대하고, 금융실명제법의 처벌조항 강화하여 외부규율이 작동하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처벌의 실효성 강화를 위하여 사용된 차명계좌 개수와 활용된 금액에 비례한 추가처벌 조항 신설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며, 대통령의 사면권을 제한하는 제도의 도입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회계부정 스캔들로 붕괴한 미국 엔론의 전 CEO 제프리 스킬링은 사기와 공모 등으로 24년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이렇게 강력한 외부규율이 미국 자본주의 질서를 유지하는 기초이며, 우리나라도 본받아야 할 global standard일 것입니다.

한국사회에서 개인적인 고민은, ‘내 직책에만 충실하고 남의 일은 간섭하지 말라.’는 태도의 동양적 “부재기위불모기정(不在其位不謀其政)” 과 서양적인 “모든 일에 참견하는 사르트르적 지식인” 사이에서의 선택문제입니다. 점잖아 보이는 ‘부재기위’의 자세는 자기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경우에만 반응하는, 궁극적으로도 자기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존재하는 사회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다.”는 리영희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전국적으로 민자도로에 대한 혈세낭비문제가 심각합니다.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 서울 우면산 터널, 광주 제2순환도로 등 ... 이 모두 다 사업타당성을 평가하는 부실한 학자의 연구에 의하여 발생한 것입니다. 이보다 더 심한 경우는 평화의 댐입니다. 1986년 북한의 수공에 대비하자는 근거로 제시한 63빌딩이 물에 잠긴다는 내용도 학자의 (거짓?) 연구가 뒷받침이 있었을 것입니다. 곡학아세인의 전형이라고 생각됩니다. 최소한 재무학회에서는 이러한 일이 없었을 것으로 생각하며 앞으로도 없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전국적인 학회차원에서 과거 곡학아세의 사례를 기록하고 분석하고 반성하여 재발방지를 할 수 있는 계기가 있기를 희망합니다. 이것이 학계에서의 정보공개에 의한 외부 규율의 강화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