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회장 인사

재무학회 회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연말이 가까워지면서 한해를 돌아보면 어김없이 옅은 한숨이 배어나오는 건 저 만의 회한이길 바라며 인사드립니다. 지난해 서브프라임으로 촉발된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정책들이 제기되고 논란이 되었습니다. 다행히 경제가 위기를 벗어나는 조짐을 보이고 있어 경제·재무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나마 위안을 삼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미국서브프라임 부실로 우리가 겪었던 고통이나 최근 두바이의 부실이 우리 자본시장에 미치는 영향 등을 바라보면서 경제・재무학자의 한사람으로 답답하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왜 우리가 통제할 수도 없고 또 우리 경제의 펀드멘털에 주는 영향이 크지도 않은 반대편 지구촌의 사건들로 인해 우리시장은 그토록 고통스러워해야 하는가? 지나친 과민반응인가 아니면 구조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인가? 언제까지 지구촌의 모든 사건 사고에 조마조마해야 하는가?

기실 이런 문제는 외환위기 이후 우리 경제발전에 걸맞은 정도를 넘어선 금융시장 완전 개방에 기인한다고 생각합니다. 전면적인 개방이 당시 최선의 선택이었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외환위기를 극복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음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자본시장 참여자들의 행태가 글로벌 스탠다드에 근접했고 국내 자본시장의 제도나 틀이 크게 선진화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자본시장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높여 외국인투자가 크게 늘었고 우리 경제발전에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위기시 외국자본에 지나치게 휘둘리는 금융시장과 외환시장을 볼 때마다 이에 안전판 역할을 할 수 있는 장치가 절실하다는 의견에 절대적으로 공감하고 있습니다. 제 소견을 피력하면서 경제·재무학자들의 연구를 청해봅니다.

우선은 안정판 역할을 할 수 있는 금융기관이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아쉽게도 그동안 국내 금융산업은 경쟁력을 키우지 못했습니다. 우리 금융산업은 아직도 국제금융시장에서 주변인으로 머무르고 있고 국내 금융시장에서 조차도 leader보다는 follower의 역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위기시 금융시장의 안정판 역할을 기대하기란 요원하기만 한 현실입니다. 특히 은행들은 IMF 외환위기시 공적자금으로 연명했고 이후 덩치를 키워야 세계적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면서 몸집 불리기에 몰두했

이 준 행

(서울여대 교수)

 

 

 

 

 

 

 

 

 

 

 

 

 

 

 

 

 

 

 

 

 

지만, 대출 쏠림 등 후진적 영업 관행으로 위기시에 오히려 체계적 리스크만 높이고 있는 현실입니다. 또한 국내 자본시장에서는 거대한 자본을 무기로 전문성이 떨어지는 분야에서도 군림하려는 경향이 있어 자본시장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Mervyn King 영국 중앙은행 총재는 상업은행 예금이 무분별한 투자에 쓰이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은행의 책임경영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지금의 상태로는 은행이 한국 금융산업을 이끌어갈 수 없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은행의 지배구조개혁에 재무학자들이 목소리를 높여야 할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국민연금도 국내 자본시장의 안정판으로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연금은 현재 300조에 가까운 자금을 운용하는 연못속의 고래로 국내 자본시장에서는 자산을 운용하는 데 제약요인이 많습니다. 대안으로 해외투자를 크게 늘리고 있습니다. 여기에 향후 10여 년간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여 국내 저축의 상당부분이 연금에 쌓이게 되어 해외투자도 급속히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국민연금과 같은 규모라면 일부는 위기에 대비한 자산배분과 자산운용을 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평소 투자시에도 위기시에는 언제든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는 단서조항을 단 투자를 행하고 해외투자의 환헤지는 최소화하는 등 좀 다른 철학으로 접근하는 것입니다. 유사시 국내 자본시장과 외환시장에 유동성을 제공할 수 있는 수단을 확보해 놓는 것입니다. 다만 이런 투자를 행하려면 성과평가가 다른 잣대여야 하므로 연금의 일부는 이런 목적으로 투자하는 쪽으로 분할하여 운용하는 것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해외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효과적으로 제약할 수 있는 수단에 대해서도 연구가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97년 말레이시아의 자본통제 사례의 경우처럼 부작용이 커 경제성장, 금융시장 발전에 저해가 될 수 있어 상당히 조심스럽습니다. 그러나 최근 선진 각국에서도 Emerging market에서는 자본이동에 대한 효율적인 통제방안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음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 자본시장이 하루 빨리 Emerging market에서 선진 시장으로 편입되어 해외충격의 영향을 작게 받도록 하는 것이 가장 훌륭한 해결책일 것입니다. 우리 재무학자들의 연구와 노력으로 그런 날이 앞당겨지기를 기대해 봅니다.